여느 때와 같은 미나토시. 최근 태양의 탑은 모종의 레니게이드 사건으로 인해 며칠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도시에 치명적인 위협이 닥친 것은 아니었으나, 사건의 영향은 심각도에 비해 크게 미쳐 성가신 문제로 번졌고, 이에 대해 시내의 민간인 피해를 수습하는 일은 항상 유일한 UGN 지부인 태양의 탑의 몫이었다. 사건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뒤에야 태양의 탑은 느슨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지부에 상주했던 인원이 번갈아 가면서 휴가를 보냈고, 츠바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츠바미는 물론, 한번은 사양했다. “제가 휴가를 보내는것 보다는, 주인 되는 당신을 보좌하는 것이 지극히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라며. 허나 그런 츠바미의 태도에 대해 류헤이도 익숙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같은 시기에 츠바미를 회유하는 것이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류헤이는 츠바미가 얼마나 많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츠바미의 업무량만큼이나 자신이 고되고 빠듯한 일정을 수행하는 것은 마찬가지긴 했다. 하지만 류헤이는 다소 츠바미에게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상사로서, 아끼는 보좌관이 스스로를 계속 태우기만 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츠바미 또한, 류헤이가 ‘자신’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에, 류헤이의 진중한 권유에 제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츠바미가 비번이었던 날. 츠바미의 우려대로 불청객은 그런 날을 틈타 찾아오는 법이었다.
휴가를 보내기 전, 츠바미는 태양의 탑의 일정을 느슨하게 조정하곤 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본디 찾아오기로 한 손님도 없었고, 류헤이는 정적이 감도는 지부장실에서 커피와 함께 남은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고요하던 커피잔의 수면에 미미한 잔물결이 일렁였다.
‘지진인가?’
아무리 가벼운 지진이어도, 방송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진에 대한 경보방송은 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것은 땅이 아니라 건물이다.
츠바미가 있었다면 지금쯤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전달을 해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직접 움직이는 게 빠르다는 것을 류헤이는 알고 있었다.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출근한 보람이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챙겼고, 지부장실을 나서며 몸에 재킷을 걸쳤다. 지부원으로부터 누군가 지부에 침입하려 한다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다른 관광객들에 비해 한참이나 멈춰서서 그 모든 것을 찬찬히 눈에 담던 연우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대부분은 실망감이었고 쉽게 드러나는 감정이었다. 그 안에 감춰진 질투심을 읽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는구나. 이 풍경의 무엇이 아름답냐는 말이다.”
연우는 눈을 떼고, 유리창에서 멀어진다. 애초에 자신이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느긋하게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곳에 UGN 지부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한 눈에 보였던 높이에 비해 연우가 밟고있는 층은 꼭대기 층보다 낮은 곳임에 틀림없었다. 예상컨대, 이보다 위엣 층이 존재할 것이고, 그곳이야말로 UGN 미나토 지부, 태양의 탑이리.
눈썰미가 예리한 연우는 그다지 헤매지 않았다. 이곳의 손님용 엘리베이터는 여기까지만 운행되지만, 손님에게 개방되지 않는, 일반 스태프조차 출입하지 않는 곳이 단 한 군데 있었다. 그렇다면 그곳이 바로 하늘로 통하는 길이겠지.
그리 향하던 연우를 당연하게도 스태프가 가로막았지만, 비오버드인 스태프가 그녀를 만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출입이 금지된 통로로 향하던 연우를 쫓은 것은 오버드인 지부원들이었다.
지부원들은 정중하게 연우를 돌려보내려 했다. 허나 연우가 그 말을 들을 리 만무했고, 곧 무력 싸움으로 번졌다. 이 또한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지만. 연우가 무기를 들지 않은 단신이라는 사실에 방심한 것도 맞았고, 환경이 불리한 것도 맞았고, 연우가 너무나도 강했던 탓도 맞았다.
당연히, 태양의 탑이라고 해서 그 모습을 두고만 보진 않았다. 에이전트의 상당수가 자리를 비웠다곤 하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테랑이 그 앞을 막아섰다. 역장을 뚫고 무기가 옷깃에 스쳤고, 그제야 연우의 걸음이 멈춰 섰다.
“호오. 과연. 소국의 손톱만 한 땅이라곤 해도 한 도시에 세워진 유일한 지부인데 지금까지의 수준으로 유지될 리가 없겠지. 하마터면 크게 실망할뻔했구나.”
“아니, 아니. 아니!!! 오늘 손님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말야?!”
“그대 또한 태양의 탑에 소속된 자이겠지.”
“이 건물 이름이 태양의 탑이긴 한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겠지!!”
역장의 허점을 통해 에이전트의 칼이 파고들었다. 베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무거운 금속음이 공간을 울렸다. 방금까지 빈손이었을 연우의 손에는 새카만 도검이 들려있었고, 거기에 가로막힌 에이전트는 얼굴을 구겼다.
“무…거워!”
에이전트는 한 걸음 물러났다. 칼을 든 손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아니, 공기 자체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주변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공기. 특별히 눈에 띄는 이펙트를 사용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음에도 힘없는 자들은 감히 고개 들고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압력이었다.
‘레니게이드에 의한 압력에 내성이 있는 이쪽이야 조금 움직이기 갑갑해진 것뿐이지만, 그게 아닌 녀석들은 지금쯤 바닥에 처박혔겠어’
식은땀을 흘리는 에이전트를 앞에 두고, 연우는 칼을 한 자루 더 형성해 내, 양손에 쥐었다. 예리한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좌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 들어라. 순순히 그대들의 하늘에 닿는 길을 열어라. 가로막는다면 베겠다. 쓸데없는 말을 하면 혀를 자르겠다. 시중들라곤 하지 않는다. 방해하지 마라. 거슬린다.”
“뭣, 아니 순순히 알겠습니다. 하겠냐고?!”
“경박하긴.”
연우가 검을 쳐들고, 대치하는 에이전트가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때였다. 에이전트의 등 뒤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층수조차 표기되어 있지 않은 철문 안에서 소음이 인다.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맞붙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행동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멈췄고, 신경을 엘리베이터에 쏟고 있었다.
살얼음판인 분위기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정지했다. 매끄럽게 문이 열리면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건 류헤이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류헤이는 공간을 짓누르는 무거운 압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근래 익히 느껴 익숙해진 힘과 비슷한 계열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에이전트의 뒤에서 걸음을 멈춘 류헤이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바닥에 찍었다.
류헤이는 정적 속에서 연우의 뒤로 이어진 수라장을 눈으로 훑었다.
‘손에 든 저건 지금까지 쓰지도 않은 건가. 모두 깨끗하게 제압만 했군. 무시무시할 정도야.’
자리를 비운 동안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면 그 보좌관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지가 눈에 선했다. 류헤이는 침음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수고했어. 원래 위치로 돌아가 봐. 여기서부턴 내가 상대하도록 할 테니까.”
류헤이의 말에 에이전트는 잠깐 망설였지만, 연우가 검을 내린 것을 보고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래서… 조직을 공격하러 온 건 아닌 모양이군. 목적이 무엇인지 들어볼까.”
서늘한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대가 이곳의 하늘인가?”
“하늘이라,”
익히 들어온 비유였다. 츠바미의 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은 류헤이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그쪽은? 혹시나 해서 묻는데, 「에반제리움」과 아는 사이인가?”
“바로 보았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오늘 그 녀석은 비번이거든.”
“꼴에 휴식을 취하는가. 덜떨어진 것. 허나 되었다. 그것에게는 애초에 볼일이 없었다.”
연우는 손에 쥔 무기를 소멸시켰다. 그와 동시에 무거운 압력도 함께 사라졌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역장도 사라졌음이 느껴졌다.
“내가 만남을 갖고자 했던 건 「에반제리움」의 새로운 주인 되는 그대다.”
순식간에 무장을 해제한 그녀에 대해, 류헤이는 완전히 경계를 늦추진 않았지만, 이제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녀가 무장하는 시간 또한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방금 전의 수준이라면 저 혼자서도 어떻게든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츠바미의 지인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더 이상 날뛰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믿음이 있었다.
“…올라갈까? 여기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잖아.”
류헤이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그는 개폐 버튼을 누른 채 연우를 보았다. 연우는 고민하지 않았고, 걸음을 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 금방 따뜻해질 거야. 난방이 자동이라서.”
류헤이의 눈은 책상과 의자를 본체만체하고 난간에 다가가는 연우의 등을 좇았다. 앉아서 이야기할 정도로 할 이야기가 길진 않은 건가. 류헤이도 그녀를 따라 난간으로 다가갔다. 깨끗하게 갠 하늘. 햇빛이 내리비쳐 반짝이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슬슬 자기소개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 말에 연우가 뒤돌아 류헤이를 바라본다.
“나는 찬미를 듣는 자. 「세일럼」이라고 불리는 자. 한때는 UGN의 에이전트로서 활동했으나, 지금은 현장에서 은퇴하여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다.”
류헤이는 그 코드네임을 어렴풋이 들어본 것도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옛날의 일이고, 해외의 일이라서 실제로 들어보았는지, 혹은 비슷한 이름을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불분명했지만.
“…무엇이 인형 따위를 홀렸는지가 궁금해서 방문했건만.”
지칭이 불분명한 말이었지만, 류헤이는 그것이 츠바미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 짚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구나. 세상은 여전히 사욕으로 가득차 더럽기만 해. 통탄스럽다. 통탄스러워.”
“아무렴, 개인의 인생이라는 것도 그렇게 깨끗하지가 않은데.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란 게 어련하겠어. 그쪽 눈에는 지저분해 보일지도 몰라.”
류헤이는 어깨를 으쓱이고, 느린 걸음으로 햇빛이 닿는 곳 아래로 향했다. 이 도시의 과거, 그리고 오늘날을 알고 있는 류헤이에게는 몇 번을 보아도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경치였다.
그럼에도 미나토는 아름다웠다.
과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 빛을 빼앗겼는지 류헤이는 알고 있었다. 번듯한 도시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늘. 도시의 비극은 그 아래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개개인의 소망이 새로운 빛이 되어 미나토를 밝히고 있다. 미래로 나아가길 염원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이루어낸 도시였다. 그 애환을 알고 있으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욕으로 점철된 세상이 허무하다고 해서, 비관하며 보내기엔 아깝지 않아?”
입꼬리를 올려 웃는 류헤이를 연우는 한점 탁함 없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가. 슬픔을 아는가.”
“글쎄. 모르는 건 아니지.”
연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소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로서 받아들였고, 시선을 유리창 너머로 돌렸다.
“「에반제리움」, 그것은 일찍이 고장 났던 것을 내가 고쳐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이라.”
“그래. 그리고 나는 나의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이 나의 ‘의무’니까.”
흠, 하고 류헤이는 가볍게 숨을 내었다.
“나는 그쪽의 사정을 잘 아는 건 아니야. 「에반제리움」… 츠바미도 자기 일을 길게 털어놓지 않는 편이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 에 관해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류헤이는 츠바미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 에이전트로서의 경력은 문서로서, 이로즈사에 츠바미로서의 삶은 그 본인에게 전해 들었다. 다만, 츠바미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삶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다. 류헤이에게 그다지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은 정보는 모두 제하고 개요만 전달하곤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쩌면 자신이 츠바미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류헤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지칭하는 건 썩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군. 츠바미는 나의 보좌관이니까 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
“아니, 틀렸다. 나는 그것을 욕보이고 깎아내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필요도 없다. 그러니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연우를 바라보던 류헤이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데 욕보일 마음이 없다고. 물론, 류헤이는 살면서, 특히 UGN에 소속된 이래로 특이한 사람들과 잊을만하면 마주치고 엮여왔다. 하지만 특이한 사람들은 그 종류도 다양해 상식인 입장에선 몇 번을 마주쳐도 그 생각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장 났다면 가차 없이 버려라. 그것은 이미 한 번 고장 났던 물건이다. 두 번 고장 나면 그 뒤로는 처분조차 귀찮아. 그것을 살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에게는 그보다 더한 치욕은 없다.”
“이해하기 힘든데… 왜 그럴 필요가 있지?”
“그대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다. 권유도 아니거니와 조언 따위도 아니다. 나의 신념이고, 그것이 바라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 사실을 전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이치다.”
그리 말하는 연우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언가를 걱정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치구나. 당연하다. 「에인헤리」, 죽지 못하는 자여. 태양이 떨어져도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그대에게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쉽게 말해 그것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헛된 바람을 불어넣지 마라. 「에반제리움」도 본디 그런 걸 그대에게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인의를 행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바란다고 해서 사람이 사람이 아닐 수가 없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수는 없어. 천부 아래 그것이 최소한의 양심이고 미덕인 셈이지. 당신은 나에게 사람이길 포기하라고 요구하는군.”
“그것이 인의(仁義)라고? 헛소리. 그것은 스스로 인(人)을 버렸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의를 행하다 죽는 것이 낫다. 부정한 자가 사람의 마음을 갈구해 봤자 의조차 행하지 못하고 번뇌의 짐승으로 타락할 뿐이다.”
“그건… 참 지독한 인간 불신이군. 츠바미도 나도, 츠바미를 지도한 본인도 믿지 않는 거지, 당신은. 하지만 츠바미가 스스로 인을 버렸든 어찌 되었든 그 애가 사람으로 태어난 건 변함이 없지 않나? 아직도 생이 이어진 사람이야. 그리고 사람은 기계장치 따위가 아니니까 언젠가는 변해. 애초에 당신이 ‘고쳤다’라고, 생각한게 큰 오산 아닐까?”
연우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그저 똑바로 류헤이를 바라보며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제 오산이 아니냐는 말에 비로소 눈썹을 까딱였다. 대꾸는 하지 않았다. 계속 듣겠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요는 그거지, 이유는 몰라도 「세일럼」, 당신은 아마 진정으로 츠바미가 길을 잘못 드는걸 걱정하는 게 아니겠지. 그냥 츠바미가 변하는 걸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아마도 피할 수 없어. 나중의 일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와의 관계를 단절할 정도로 이쪽의 신념이 무른 것이었다면 태양의 탑의 지부장 같은 건 할 수 없었을 테지.”
“착각하는 꼴이 우습구나.”
그리 말하는 입에는 가볍게 웃음이 걸렸다.
“허나 그런가, 과연 하늘은 하늘인가. 하늘인 줄 착각하고 바닷물에 처박힌 것이라면 친히 물을 말리고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만은.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던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에반제리움」. 하늘 위에서 찬미의 좌를 내려다보는 불경을 참는 것도 여기까지다.”
공간에 생겨난 흑점. 그것에서 사람이 나타난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연우도 류헤이도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류헤이 쪽은, 조금은 곤란한 얼굴이긴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는 둘째치고 오늘은 정말로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개판이 났다. 그렇게 됐다.
“당신께는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군요? 「세일럼」.”
“나는 발언을 허가하지 않았다.”
불유쾌함. 공기를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느낄 수 있었다. 류헤이가 가볍게 손짓해 중재했다. 연우는 순순히 기색을 거두었지만, “흥이 깨졌다.”, 라며 뒤돌아 왔던 길을 돌아간다.
“…잘 알았다. 「에인헤리」, 자격 있는 자여. 어디 좋을 대로 망가뜨려 보아라. 그리고 「에반제리움」, 하늘이 흐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아해야. 때가 되면 감히 변함없는 하늘 아래 서길 바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 몽중몽인지 깨닫고 후회하도록 하거라.”
마지막까지, 특히나 츠바미에게 퍼부은 말은 사실상의 악담이었다.
따라 걸음을 떼려는 두 사람에게 연우는 배웅이 필요 없다 일축했고, 인사도 없이 유유히 제 발로 걸어 태양의 탑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