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기억
미친소리연속발생

  백면의 남자, 「Deep Blue」. 새카만 바다와 같은 푸름.
  아사히나 소라를 데려온 「Deep Blue」는,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저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납치해 온 대상을 상대로 ‘이해’를 시도한 것은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에 「Deep Blue」의 동료들은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그 행동 또한 실험의 일부임을 알게 된 후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사히나 소라는 처음에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Deep Blue」는 ‘보통의 인간’을 상대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 때문에 그 본인이 의도치 않아도 행동이 폭력으로 이어지곤 했다.

  한번은 저항하는 그녀의 목을 잡아 비트는 바람에 그녀의 목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당연히 사소한 소란이 있었다. 오버드로 각성한 아사히나 소라는 죽지 않았다. 다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손에 쥔 소라의 뼈가 어긋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Deep Blue」는 드물게도 당황했고, 소라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료들이 보기에 「Deep Blue」는 상당히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셀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이질적인 인물이었다. 원래부터 FH에 모인 사람 중에서는, 인간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인물이 꽤 많기야 했다. 그야 충동에 잠식된 이들의 대부분은 행동 원칙이 지극히 단순하고 이기적이니까. 그러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이질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 업으로 삼는 셀에서는 실험체를 폐기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의 폐기 방식은 완전히 이형으로 변모해 버린 졈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잔혹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폐기한 실험체가 사지 멀쩡한 모습으로 남은 적이 없었으니까.

  「Deep Blue」가 다루기 힘든 실험체를 난도질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한 뒤로 머리와 척추가 사라진 폐기물을 만들곤 했다. 그런 그가, 실험체의 경미한 부상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고쳐달라며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후로 자신을 겁내는 소라에게 사과에 가까운 말로 운을 떼었다. 비록 “미안하다, 라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라는 의문형이기는 했어도.

  셀의 동료들은 생각했다. 분명 번거롭다고 판단할 것이다, 곧 그만둘 것이다, 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Deep Blue」는, 분명 이 방식이 무척이나 번거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섭취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파악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개체가 수치로 환산하자면 약 20% 쯤 존재했으니, 언행으로 드러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Deep Blue」는 인내하며 아사히나 소라를 관찰했다.

  아사히나 소라를 잠식했던 환경 변화와 미지에 대한 공포심은 차츰 가라앉았다. 그 후로는 남자의 배려 없는 행동들을 아사히나 소라 나름대로 견딜 수 있었다. 저가 한번 다쳤던 이후로는 그쪽에서 먼저 손을 대는 경우가 드물었다. 제 곁을 떠나지 않으며 뚫어질 듯이 관찰하고 질문을 반복하는 그의 행동도, 어느샌가 ‘성가심’이 두려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Deep Blue」는,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
  최소한 당장 그가 가진 의도는 그랬다. 그 사실을 어린 소라가 깨달았을 때, 처음으로 소라 쪽에서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Deep Blue」는 소라가 자신과 교류하길 바라는 것에 호기심과 기쁨을 느꼈고, 소라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들렸으니까.

  소라는 바깥 공기를 마시길 희망했고, 「Deep Blue」는 그것을 승낙했다.
  소라는 자신의 힘에 대해 알길 원했고, 「Deep Blue」는 이론을 가르쳤다.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면, 「Deep Blue」는 그것을 소라의 손에 쥐여주었다.
  곧 소라는 방에서 나와 아지트를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Deep Blue」는 소라의 행동에 사소하게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도주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았다.

  한 번, 소라가 도망가길 시도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는 보이지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아지트를 빠져나온 소라를, 「Deep Blue」는 놓치지 않았고, 한순간에 따라잡아 데리고 왔다.
  아지트에 돌아와, 마치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소라의 두 손을 잡고, 한참이나 그 눈을 들여다본 「Deep Blue」는 말했다.

  “다행이다.”

  어째서였는가 하면, 그건 아사히나 소라가 ‘공포심’을 잊지 않았음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규격’에서 벗어나지도, 망가지지도 않은 채였기 때문에 나온 감상, ■■하는 소라를 잃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Deep Blue」는 그러한 일이 재차 발생했을 때 자신이 소라에게 허용했던 일말의 자유를 영영 빼앗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라가 다시는 도주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에게는 그저 이유와 결론을 가감 없이 전달한 것뿐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네가 그러길 원한다면 선택을 존중하겠다.”라는, 행동에 따른 결과를 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사히나 소라에게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것은 틀림없이 협박으로서 작용하는 말이었고, 아사히나 소라가 체념하여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소라의 마음은 이전보다도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정확히는 두려움에서부터 눈을 돌리는 법을 터득해 갔다.
  소라는 「Deep Blue」가 임무나 실험체의 조달을 위해 외출을 할 때에 아지트에 있기보다 동행하길 바랐다. 「Deep Blue」는 만류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방식’을 아사히나 소라가 접했을 때, 그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고려하지 않은 채였다.

  아사히나 소라는 당연히 실험체를 선정하고 납치하는 행동에 적잖은 충격을 받긴 했다. 하지만 금방 「Deep Blue」의 잔혹함에 적응해 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대할 때의 태도와 자신을 대할 때의 태도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사히나 소라는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 그을 수 있었고, 그 얄팍한 선에 마음을 보호받고 있었다.

  그렇게 소라는 「Deep Blue」에게 익숙해졌다. 정확히는 스스로 익숙해질 수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의 일이었다.

  소라는 「Deep Blue」가 납치한 사람들의 처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를 따라다닌 이유도 근본적으로 그의 행동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서는 아니었다. 살아가기 위한 힘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필요했고, 원동력은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밖에서 행동거지를 보아, 그의 ‘개인사’라는 것도 그다지 정상적이진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 그와의 동행에 적응할 무렵에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이었다. 아사히나 소라는, 「Deep Blue」가 실험체를 폐기하러 가는 모습을 마주치고 물었다.

  “그건 이제 어디에 써?”
  “개체 정보를 취합, 섭취한 뒤 폐기한다.”

  순수한 질문이며, 건조한 대답이었다. 소라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대답이기도 했다. 쓰고 버린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선에서의 최선. 소라의 무구한 호기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소라가 「Deep Blue」의 개인 작업실까지 따라온 것은. 그는 소라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만류하지는 않았다.

  유독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지하실. 암묵적으로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Deep Blue」의 작업실로 쓰이는 장소.
  그곳에서 소라는 실험체들의 말로를 목격했고, 후회했다.
  비인륜적인 실험의 끝에 다양한 형태로 남겨진 ‘특이 표본’들은 대개 끔찍한 모습이었다. 소라는 그것들을 오래 두고 보기는커녕, 차마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혀있다가 구토하기 시작했다. 열린 문 사이로 펼쳐진 지옥도 속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멀쩡하고도 아름다운 표본을 본 것이 소라의 마지막 기억으로, 정신을 차렸을 땐 깨끗하게 씻긴 채 이불에 말려있었다.

  소라는 한동안 기운이 없었다.

  새삼스레 자신 또한 그의 ‘실험체’로서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떠올라버렸고,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Deep Blue」는 소라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소라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답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대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오늘을 넘기면 내일은 살 수 있을까.
  그는, 언제쯤 자신에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걸까?

  악몽에 시달리던 소라의 얼굴에 차가운 손이 닿았다.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눈이 겨우 뜨이면 두려운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둑한 조명 속에서 그의 새카만 눈은 파랗게, 또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소라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아사히나 소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사히나 소라.”

  재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입술을 들썩였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에 차오르는 눈물로 얼룩진 시야가 번져가고 있었다.

  “아사히나 소라. 언어로 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싫어!!!”

  간신히, 정말 간신히 쥐어 짜낸 목소리였다. 그 목메는 목소리에, 남자는 무언가 생각하듯, 움직임 없이 내려다본다.

  “특정 사건과 관련된 반복적인 악몽 등을 통한 외상성 기억의 재경험, 외상적 사건과 관련된 자극에 대한 회피, 외상적 사건과 관련된 인지와 기분의 부정적인 변화, 증가한 각성 반응. …그렇군. 이런 건가. 생각보다도 연약하군.”

  그 또한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자 했던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Deep Blue」라는 개체집단은 술렁이고 있었다. 물론, 이 반응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보다도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두렵나?”

  아사히나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심호흡을 해라. 숨을 길게 들이마셔. …그리고 내쉬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남자는 소라가 어떻게든 진정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소라가 겨우 진정하고, 눈물을 그쳤을 때야 남자는 소라를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타 개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나 소라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다름이 아닌 우리, 아니, ‘나’인 듯 해. 그것은 어째서지?”
  “…어차피, 나도 실험체잖아”

  띄엄띄엄. 소라는 말을 이어갔다.

  “무서운 게 당연하잖아, 당신이, 언젠가 나도, 저런… 그렇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데.”

  다시금 소라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혼잣말을 되뇐다. 그런가. 그렇군. 합리적인 사고, 아니 본능의 쪽인가. 라며. 그러다 입을 다문다.

  “네가 방금 발화한 내용의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은 더욱 않겠다. 너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섭취한 뒤 폐기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너를 이대로 관찰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크다. 정보의 양도, 질도. 그러니까, 우리가 아사히나 소라를 무익하게 폐기할 이유는 없다.”

  심박수 변동 없음. 아드레날린 과다. 뇌파 불안정.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사고 화합 작용… 즉, 우리들이 갖는 감정이라는 것은, 이 육신의 두뇌를 통해 연산이 가능하다. 아사히나 소라라는 단일 개체를 대상으로 한 연산과 라벨링 되지 않은 실험 개체들을 대상으로 한 연산의 값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일례로, 우리는 지금 너의 행동에 대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즉, 이러한 사례들을 취합했을 때 우리의 목적성과 달리하는 사고 화합 작용 스펙트럼 카테고리가 크게 둘. 두 카테고리를 합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면, ‘애완’. 따라서, 조금 전의 실험체의 사례와 아사히나 소라라는 개체의 사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
  “그러니까 즉,” “저기,”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음.”

  침묵 속에서 「Deep Blue」는 언어의 단순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아사히나 소라는 어쩐지 남자가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너의, 안전을, 약속한다.”
  “우리는, 언젠가, 자유를, 약속한다.”

  「우리는, 합의를 마쳤다.」

  그 순간에 또다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남자의 옆에 있으면 그의 목소리도, 자신의 목소리도, 세상 그 어떤 목소리도 아닌 것이 이따금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소라는 자신이 당장 자유롭지 못할 테지만 안전만큼은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소라를 바라보다, 제 손끝을 소라의 머리 위에 올리고 톡톡 두드렸다.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 쓰다듬는 행위를 의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소라가 깨달은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 사건이 소라가 자신의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게 된 두 번째 계기였다. 그 뒤로 소라가 남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꽤 줄어들었다. 여전히 슬프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남자는 꽤 신중하게 소라를 대했고, 소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의 행동들이 잔혹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소라는, 남자의 행동을 스스로 납득하고 있었다.

  그보다도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 남자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소개할 정도의 별종일 뿐이었다. 조금 이상한, 새로운 가족. 소라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어느 날 한 여자를 품에 안고 돌아와, 작별 인사를 하는 법에 관해 묻는 것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발자취를 감췄던 날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