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 조각
조각모음

  1. 환각과 꿈에대한 아무말

  츠바미는 윌리엄을 싫어하는 것에 비해, 그 감정을 표정으로 내비치진 않는다.

  “그렇습니까? 하하. 참- 새삼스러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윌리엄은, 제게 등을 보인 채 허공에 다리를 꼬고 앉아 대답하는 츠바미를 곁눈질로 한 번 보았다. 아무리 ‘시선’이라는 게 그 본인에게는 상관이 없다곤 해도, 저 뻔뻔한 태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윌리엄 또한 츠바미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복수심, 이라고하기에는 대단치 않았지만 그러한 류의 반항 심리에 의한 행동이었다.

  “뭐, 너는 항상 얼굴근육을 반만 쓰니까.”

  윌리엄의 말을 들은 츠바미는 생각했다. 그렇겠지.
  윌리엄을 다시 만났을 때 즈음, 차오르는 메스꺼움을 참지 못해서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츠바미는 그 일을 꽤나 후회했다. 그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가, 츠바미는 입 꼬리를 당겼다.

  “그야 당연하죠. 당신을 의식에서 배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낸다는 말을 태연자약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 말란 말이다, 이 재수 없는 놈.”

  윌리엄은 발끈 화를 냈다. 하지만, 담백하게 받아치는 것 이상으로 역정을 내지도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츠바미는 윌리엄을 싫어한다. 그것은 윌리엄에게 있어 당연한,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윌리엄이 만들어내는 츠바미의 환영은, 때때로 실제 본인보다도 윌리엄에게 냉정했다. 윌리엄 스스로가 자신의 죄의식과 트라우마로 빚어낸 자학의 결과물이었으니까.
  그 냉소가 가슴을 후벼파는것도 익숙해졌으니까 상관없다, 라고 윌리엄은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하지만, 예. 그렇군요.”

  가볍게 바람이 일었다.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윌리엄은, 제게 무척이나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인 츠바미와 마주쳤다.
  가뜩이나 자신이 빚어낸 생생한 환각으로 인해 머릿속에서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 얼굴이다. 혹은, 이 얼굴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에 저가 환각을 빚어내는 쪽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심란한 와중 그렇게 갑작스레 그 얼굴을 마주하면 아무리 익숙해졌대도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윌리엄. 어째서 당신이 제 태도에 대해 불만이 아닌 의문을 가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딱히 유별난 의문을 가진 건 아니었는데. 너야말로 뭐야, 이 과민반응은. 이쪽 숨소리도 듣기 싫은 거 아니었나?”
  “제가 그동안 당신에 대한 혐오감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라는 말입니다.”
  “아니 혐오감 자체는 충분히 내비치고 있거든??”
  “헌데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저를 신경 쓰고 있군요. 꼭 제 경멸하는 얼굴을 몇 번이고 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윌리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닌 건 아니니까. 괜히 부정해봤자 이 맹랑한 보좌관에게 물어뜯을 먹이를 주는 꼴이 된다.

  다만 자신이 환각을 본다는 말까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츠바미를 똑바로 보았다. 츠바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숙였던 허리를 펴고, 다시 허공에 기대어 앉았을 뿐. 다만 그 얼굴은 윌리엄을 바로 향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츠바미는 윌리엄의 꿈을 꾸곤 했다.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윌리엄이라는 존재는 한동안 자신을 괴롭게 했고, 잊을만하면 꿈에 나와 제 숨통을 조여 왔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과거가 된다. 어떤 일이든 예외는 없다.
  이 당연한 법칙이 마음의 파문을 가라앉히고, 정적을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윌리엄의 꿈을 꾸는 일이 종종 있었다. 다만 이전과 같은 악몽에 휘둘리진 않았다.

  꿈속의 윌리엄은 암흑 속에 있었다. 꿈속의 윌리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꿈에서 만난 것이 윌리엄이라는 사실을 츠바미는 알 수 있었다.
  때때로 꿈속의 윌리엄이 제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가볍게, 제게 닿는 감각에 꿈속의 자신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 이상으로 윌리엄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꿈속에서 윌리엄과 닿은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고, 꿈속에서 윌리엄의 체온을 느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감정의 모순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츠바미는 궁금했다. 그도 꿈이라는 걸 꾸는가. 그 꿈에, 자신은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존재로 비추어지는가.

  자신의 꿈을 꾼다면, 분명 불쾌할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은 그 이상으로 불쾌하다.

1 /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