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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TY

  마계, 아마키리에도 벚꽃이 피었던 어느 봄날. 창밖으로는 흐릿한 햇살이 스며들었고, 이른 시각부터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셋방에서 아침을 맞는 남자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몇 장 남지 않은 명함과 스마트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탁자에서, 그는 명함 한 장을 집어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엔도 토야 / Tel.0xx-xxxx-xxxx 」

  이름과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힌 간단한 명함. 그 외에는 특별히 인적 사항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지 않은. 아무 직함도, 회사명도 로고도 없이 그저 이름과 연락처 뿐인 하얀 종이. 의도된 디자인이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영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명함을 받아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심쩍은 표정부터 지어 보였다. 돌아서는 고객(잠재적)들이 다시 연락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만도 한가. 에라이.

  토야는 허탈하게 웃으며 명함을 내려놓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귀신이니 악마니 하는 것들의 위상이 쇠퇴해가는 요즈음 같은 세상에 퇴마사라는 직업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차선책으로서 ‘해결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심쩍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것은 매한가지인 직업이다. 따지고 들자면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지만. 이를테면 돌아다니며 일감을 찾는 그가 초면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임팩트를 줄 수 있겠는가, 같은 문제가 있겠다. 토야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곤 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아선 뒤에 상대에게 남는 것은 명함 한 장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마케팅 비용이 치솟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다못해 사무실이라도 있었으면,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효과라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결론은 최근 벌이가 큰 일감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덕분에 생활고의 서슬 퍼런 칼끝이 슬슬 목에 닿고 있음을 이 남자는 느끼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이전에 의뢰를 받아 벌어들인 돈도 이제는 거의 바닥을 보였다. 목돈이 들어왔다고 방심하고 있었더니, 숨만 쉬어도 돈은 나간다는 부조리한 현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요즘엔 가끔 길거리에서 광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오래된 지인들에게 연락해 일없냐는 식으로 운을 떼 SOS를 보내 연명하고 있었다. 명백하게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토야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답 없는 냉장고를 열어보며 아침밥을 간단히 해결할 궁리를 하던 찰나, 싱크대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바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행동 이전에, 본능이 먼저 “아, 이…” 하는 탄식을 자아낸다.

  물론 자잘한 벌레들과의 동거는 어디서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 낡아빠진 아파트에서는 어떻겠는가. 다만 평소에는 그의 능력이 알아서 이들을 쫓아내 주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을 녀석들이 레니게이드에까지 적응한 경우였다. 오늘도 생물의 진화에 일조하고 만 것인가. 대단한 생명력이다. 지긋지긋하게도. 가끔 천장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쥐도 있는 게 틀림없겠지, 그저 눈에 띄지 않을 뿐.

  ‘쥐랑 벌레를 쫓는 게 차라리 귀신 쫓는 것보다 나은 벌이가 될지도 모르겠군.’

  자조적인 웃음이 터졌다. 실제로도 드물게 들어오는 심령현상 관련 의뢰조차 대부분은 그것들이 문제인 마당이다. 그렇다. 이미 방역 활동은 토야의 수완에 포함되어 있었다.

  퇴마사는 세X코와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이었던 건가…

  … 아니지. 다르지!

  아무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쫓아내는 것과 그들과 동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토야는 이 방의 계약이 만료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 깔끔하고 넓은 거처에서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초의 계획보다도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충분히 넓어서 사무실로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었으니, 사운드라도 채워 잡념을 떨치려 했다. TV를 켜면 아침방송을 전하는 캐스터의 경쾌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몇 가지 코너가 지난 뒤엔 언제나의 별자리 운세 코너가 흘러나왔다.

  『대망의 1위는, 물병자리! 물병자리인 당신! 오늘은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요! 눈앞에 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는 직감을 믿어보는 게 어떨까요?』

  본래 점성술이야 운명을 점치는 고전적인 수단이긴 하지만, 아마 이런 티비쇼에서 하는 오늘의 운세 같은 것은 그다지 공을 들여 보는 운세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경험상, 이런 것은 인과가 반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운이라는 것은 지금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이 방송 멘트마저 제게 주어진 운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때 핸드폰에 가볍게 진동이 울렸다. 타이밍 좋게 나타난 의뢰자는 토야로부터 하여금 피식, 하고 웃음이 새도록 만들었다. 그래, 운명적인 만남이고 나발이고 우선 일이다 일.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 없으리. 얇은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설 때 즈음이면 잡다한 생각은 깨끗하게 정리된 뒤였다.
  



  그날 하루, 토야는 외출한 이래로 쭉 좋은 예감과 함께했다. 다른 사람에게 뭐라 설명하긴 어려운 분야지만 그는 직감이 예리했고, 대개 이런 날에는 쏠쏠한 벌이가 되는 일을 맞닥뜨리곤 했다. 그래서 큰 건수가 들어오길 기대했는데, 벌써 해가 슬슬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들어온 의뢰도 간단한 것이었다. 간단한 일, 좋지. 좋긴 한데, 간단한 일만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된다. 요 근래처럼.

  아마키리 시는 흉흉한 소문이 많은 도시였다. 범죄율도 타 지역에 비해 높고, 미스터리한 괴담도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토야가 봤을 때, 음기가 강한 지역도 맞았다. 그러니 이곳에 온 목적은, 어떠한 실마리를 좇기 위함도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런 곳이라면 쏠쏠하게 돈벌이가 될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원래 좆같은 땅은 좆같은 놈들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당연히 ‘업계’의 사람들도 돈 냄새를 맡고 일찌감치 뛰어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토야처럼 후발주자로 들어온 사람이 파이를 나눠가지기 위해서는 기반부터 다져야 하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 후발주자인데 도시를 주름잡고 있는 야쿠자의 입김이 세게 작용했다. 무슨 말이냐면, 함부로 여기서 장사를 해보겠다고 판을 벌렸다간 돈 냄새를 맡고 온 깡패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귀찮은 일이었다. 아니, 폭대법이 시행된 지가 언젠데 지금에 와서 야쿠자가 설치고 다닌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이 도시는 아직도 90년대인 거냐?

  아무튼, 그런 이유로 토야의 손에 떨어지는 일들은 간단한 의뢰들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오래간만에 발동한 자신의 직감이라는 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딜 향해 이렇게 긍정 회로를 불태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장이라도 났나? 직감은 일종의 신기인데. 신기가 그럴 수도 있나?

  해가 넘어간 아마키리에는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 유독 화려한 건물이 귀가 중이던 토야의 시선을 끌었다.

  경치 좋은 바닷가 인근에 리조트와 함께 세워진 NS카지노는,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아마키리에서 몇 안 되는 진짜 관광 명소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화려하거나 말거나 쉽게 지나칠 법도 했다. 어차피 도박이라는 건 속임수다. 아주 잠깐 즐거움을 준 뒤에 방문객의 얇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먹는 무서운 곳이다. 파친코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는 간판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조금만 벌고 나오는 정도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그다지 망설임은 없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라는 안일한 마음뿐이었다.

  오늘의 운세도 최고조, 직감도 제게 이거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고사하고 돈부터 벌어야 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면야, ‘승기’를 유리하게 가져오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이곳의 오너가 얼마나 레니게이드 지식에 밝은지는 몰라도, ‘손실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그다지 걸릴 위험이 없다. 경험상의 이야기였다.

  보통은 그랬다, 보통은.
  토야는 NS 카지노의 오너가 그 ‘보통’이라는 규격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운명이 소소한 벌이 이상으로 전환점을 맞이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한채, 둥지에 발을 들이고 만 것이었다.

  쏟아지는 빛이 바닥에 반사되어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화려한 샹들리에. 단순한 파친코 가게들과는 규모가 다른 화려한 내부. 홀의 입구 앞에는 거대한 원형의 로비가,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각종 게임 테이블, 끝없이 늘어선 슬롯머신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음료를 나르고 있었고, 화려한 조명과 음악, 코인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이 모든 분위기에 취한 손님들이 있었다.

  그다지 유흥에 관심을 두지 않은 방문객의 마음도 들뜨게 만드는 분위기에, 토야는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이쪽에겐 호재가 된다. 약간의 돈을 칩으로 바꾼 뒤 느긋하게 카지노 내부를 둘러보던 토야는 블랙잭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그 뒤로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한 토야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즈음 카지노에 입장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어깨 위에 걸쳐진 새하얀 외투. 고급스러운 치마와 깔끔한 블라우스. 세련되고 단정했지만, 유니폼과는 달라 계절감이 약간 어긋났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손님처럼 보이는 옷차림. 하지만 그 아우라는 확실히 인상 깊다. 좋게 말하면 신비롭고, 솔직한 감상으로는 첫눈에 보기에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도박을 즐기러 온 사람들과도 어울릴 생각이라곤 없어 보이고, 게임 테이블에도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 인물. 츠키나 미코토는, 대체로 리조트를 포함한 카지노의 관리를 산하 조직에 맡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본인이 직접 행차하는 일은 상당히 드물었다. 그런 미코토가 하필 그날 업장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아주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만약 왜 하필 오늘이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벚꽃 놀이를 하기에 좋은 날이라서’ 같은 뜬구름 잡는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업장을 둘러보던 미코토의 시선은 곧 엔도 토야라는 인물에게 머물렀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소위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토야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사는 것이 마음 편한 범인인 토야가 남을 속이는 것보다는,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된 사소한 제스처부터 익혀야 했던 미코토가 그 신호를 간파하는 것이 더 능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통의 손님이었다면 적당히 좋을 대로 상대하도록 두었을 것이다. 고객의 속임수 정도야, 업장에서 일하는 감시자들이야말로 그 기색을 간파할 뿐인 미코토 이상으로 전문가니까. 카지노라는 것은 사업의 자금원이기도 했지만, 손님에게 어느 정도 즐거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는 장소라는 것이 이 오너의 생각이었다. 그리 두지 못했던 것은 이 ‘어른 개체’가 이펙트를 사용하는 찰나의 순간을 목도했기에,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를 오버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나…” 미코토가 지금의 몸을 빌리면서 생긴 습관적인 탄성이었다.

  도시의 오버드라면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츠키나 미코토’의 의무였으니까. 그런 미코토가 모르는 뉴페이스, 그것도 이펙트의 사용이 교묘한 프로다. 최근에 각성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마 유입된 인물이다. 오버드에게 큰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미코토에게 있어서는 오버드가 아닌 쪽이 좀 더 생소하게 느껴지곤 했다. 다만 그의 위치는 사소한 예외를 불허했고, 본능은 사소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그뿐인 일이지만, 계기로서는 충분했다. 미코토의 손은 곁에 서있던 사용인을 향했다. 미코토의 손길에 이끌린 사용인은 고개를 숙여 귀를 내어준다.

  “흥미로운 인간이, 그것도 오버드가 하나 있네요? 배짱도 넉살도 좋은 인간이거나, 혹은 무언가 목적이 있거나… 후후, 어느 쪽이든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곤란하겠죠?”

  그 장난스러운 단어 선정에 사용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미코토를 두고 사라졌다. 자신의 말이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금방 매니저에게 전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코토 또한 그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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