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미나토 속으로
in 탐정사무소

  최근 미나토 시에서 일어난 소란의 여파로 시내 곳곳에서도 자잘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교통 통제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 등 단순하고 일시적인 해프닝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여럿 이어졌다. 이를테면 애완동물이 탈출했다거나, 소란을 틈타 도둑이 들었다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실종되었다거나. 대부분은 별것 아닌 일이긴 했지만, 일의 경중을 떠나 탐정 사무실에 발걸음하는 사람의 숫자 자체가 늘어났고, 덕분에 윌리엄은 쉴 수 없었다.

  수면 시간까지 아껴가며 의뢰를 수행한 까닭은, 윌리엄이 근면한 성미를 가진 인물이라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규칙한 생활을 오래 수행한 탓에 휴식 시간과 업무 시간을 분배하는 데에는 꽤 서툴렀고, 몸을 혹사하는 감각에도 둔감해져 있었다. 그 결과, 어느 날 귀갓길에는 수변공원의 벤치에서 기절해 버린 적도 있었고, 마침 이른 새벽 미나토 시를 살피던 어떤 보좌관이 발견하여 집에 데려다 놓은 일도 있었다나 뭐라나.

  결국에는 그렇게 윌리엄은 모든 기력을 소진한 채 완전히 방전되었다. 웬수 같은 윌리엄이 과로사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과연 츠바미는 그 어리석음에 어이없어할까, 제 죽음에 통쾌해할까. 윌리엄이 몽롱한 정신으로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사무실의 문패를 ‘휴업’으로 뒤집어 놓은 게 새벽녘의 일이었고, 그대로 정오가 넘어갈 때까지 늘어져 자고 있었다.

  내려간 블라인드 사이를 통과한 햇빛이 사무실에 드리웠다. 사람이 사라진 한낮의 거리는 조용하고, 사무실은 휴업. 태양의 탑도 당분간 휴가를 보낸다고 했으니 영업시간 외 손님이 찾아올 일도 없다. 평소라면 방해받지 않고 늦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했는데. 정적을 깨는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옅은 먼지 냄새뿐이었던 차가운 공기에 섞인 따뜻한 녹차 향이 윌리엄의 잠을 깨웠다. 그 외부 자극으로 인해 무의식에서 건져 올려진 윌리엄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윌리엄은 잠에서 깨고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뻔뻔하게, 영업하지 않는다고 명시해 둔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은 츠바미 외에 달리 없었으니까. 현관을 통하지 않으니까 몰랐습니다만, 문제가 됩니까? 라고 일축하며 제 할 말을 쏟아내곤 하는 얄미운 보좌관을 오늘 같은 날에도 상대해야 한다니. 태양의 탑은 당분간 휴가라고 하지 않았나. 그냥 죽은 척 할까. 얼마나 버티나 시험해 봐? 잡다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윌리엄의 정신은 또렷해졌다. 그러니까, 농성하길 포기한 것은 자연스레 잠이 달아나서였다.

  적당히 상대하고 돌려보내자, 라고 마음을 먹은 뒤 윌리엄은 슬리퍼를 신고, 후줄근한 차림새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손님용 탁자를 눈에 담은 순간.
  윌리엄의 뇌는 생각을 멈추었다.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의 불청객. 굳이 찬장에서 홍차와 커피 중 녹차를 꺼내 우리는 손님. 최소한 윌리엄의 지인 중에서는 그런 인물이 흔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단 한 사람, 츠바미뿐이었다. 그러니 츠바미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윌리엄은 그 분위기까지도 츠바미와 닮았다는 인상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눈앞에 있는 이가 츠바미가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로 부조화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제야 윌리엄은 한발 늦게 불청객을 경계했다. 어디의 누구인지, 오버드인지조차 불명확한 사람에게 곧바로 공격을 행하진 않았으나, 윌리엄의 인자는 순식간에 적의를 가진 사람에게 맞설 준비를 마쳤다. 자기 목에 칼이 겨누어져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주인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적 속에서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던 손님, 연우가 입을 뗀 것은 수 초 뒤의 일이었다.

  “어리숙한 것. 손님맞이가 늦는구나.”
  “당신은 누구지?”
  “명색이 추리하는 자인데, 그 부분에 대해 질문부터 하는 건가. 실망스럽구나.”

  ‘뭐지, 이 뻔뻔한 반응?’
  마치 전공자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는 순수한 비전공자 친구와 같은 발언이었다. 그 발언에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악의 없이 던진 돌에 맞은 윌리엄의 황당함은 가중되었지만.

  윌리엄은 사무실이 저가 잠들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 불청객에게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소한, 당장은 그렇게 보였다. 숙달된 전투원이라면 이미 자신에게 공격을 행할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 예정에 없던 손님은 누구인가? 경계심이 느슨해진 마음에는 그러한 호기심이 자연스레 싹텄다. 윌리엄은 벗어둔 옷에서 담뱃갑과 휴대전화를 찾아 주머니에 넣었다. 당장 피울 것은 아니었지만,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꽤 부산스럽게 돌아다닌 뒤에야 그 맞은편에 앉아 손님을 맞았다.

  그제야 윌리엄은 불청객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왜 츠바미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차를 음미하는 호흡, 잔을 드는 방법, 식기를 조용히 다루는 모습. 츠바미에게 배어있던 습관이 제 앞에 있는 상대에게서도 보였다.

  “과연, 께름칙한 형태로구나. 이매망량과 닮아가고 있는가.”

  아아, 다짜고짜 생긴 거로 태클이냐고, 제기랄. 이런 부분까지도 닮을 게 뭐람. 윌리엄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들을 삼켰다. 배려 없는 언행도 그렇지만, 제 모습에 고작 이 정도의 반응인 것이 그다지 평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억제제는 복용하지 않았고, 상식적으로 부조리한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바로 직전까지 윌리엄이 자신의 모습을 잊고 있었을 정도로 무반응이었던 것이다.

  윌리엄은 제 앞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내고자 했고, 전자에 대해서는 아주 감이 잡히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로즈사에와 아는 사이?”
  “「에반제리움」.”
  “그래, 그 녀석한테 여자 형제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모른다. 애초에 그것에게 가족이 있을 리가 없다.”

  윌리엄의 미간에 미미한 주름이 파였다. 제삼자의 입에서 츠바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은 썩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 가족의 최후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이 자신이니까. 그러니 윌리엄이 가볍게 닫힌 눈꺼풀을 열었을 때, 맞은편에 있는 인물이 제게 책망하는 시선을 보내기는커녕 저보다 녹차에 더 관심이 있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느끼고 있었다.

  “잠금을 강제로 뜯어내진 않았어. 창문도 닫혀있고. 게다가 코드네임을 호명하는 것이 익숙해 보이는 그쪽은 오버드겠지.”
  “당연하다. 그것이 오버드가 아닌 존재와 연관될 이유는 없다.”

  ‘이것도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윌리엄의 기억에도 츠바미는 비오버드와 연관되길 극히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보다 정확히는, 태양의 탑 사람들 외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에 일뿐인 인물처럼 보였으니 이렇게 츠바미의 지인을 자칭하는 제삼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츠바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

  “이로즈사에 츠바미가 지나간 상사와 연락하고 지낼 정도로 살가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그 녀석이랑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
  “지나간 하늘에는 의미를 두지 않으며, 하늘 또한 이치에 따라 존재하고, 흘러갈 뿐이지.”
  “…잘은 몰라도, 외견상 그쪽이 일본인은 아니야. 흔치 않은 복식인데. 중국인가?”
  “호오. 서방의 아무개가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아나 보구나.”

  가끔, 츠바미도 비슷한 계통의 복식을 입곤 했다는 사실을 윌리엄은 떠올렸다.
  “당신은 그 녀석의 스승이나 보육자인가?”
  “아깝구나. 허나 부정하지도 않겠다. 굳이 따지자면 정답이라고 해둘까. 상식에 대입한다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애매한 답변이었다. 윌리엄의 얼굴에 불만족스러움이 떠올랐다. 맞으면 맞는 거고, 틀리면 틀린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페이스대로 말을 이어가는 상대에게 굳이 딴지를 걸지는 않았지만.

  “나는 「세일럼」이라고 불리는 자. 「에반제리움」을 깎아 세상에 내놓은 자로서, 그것을 살피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정답을 맞힌 것을 치하하듯,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반쯤 감겨있던 눈을 바로 뜨고 윌리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윌리엄에게는 생소한 코드네임이었으니 당장에 유익한 정보값은 이어지는 소개 쪽이었다.

  “왜 그런 송장을 주워 왔는지는 내게 묻지 마라. 나 또한 모른다. 이유야 관심도 없어. 나는 그저 그것을 길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도록 명령받았다.”
  “알만하군. 그래서? 그 녀석이 어떻게 사는지가 걱정되어서 사찰이라도 나온 건가? 혹은 당신의 손에서 벗어나 임무지에 있는 것이 신경 쓰여서? 어느 쪽이든 꽤 아끼고 있나 보군.”

  츠바미는 따지고 보면 꽤 어리긴 했지만. 보호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면 과보호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 감찰이 목적이라면. 제 앞에 있는 건 자신과는 더더욱 상관이 없어야 할 인물이다. 그런 생각으로 뱉은 무신경한 말이었고, 그 무신경함에 대한 반응은 코웃음이었다.

  “내가 그것을 신경 쓴다는 전제를 부정하지 않겠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온 건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찾아올 곳을 잘못 짚었어. 그 녀석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고, 나랑 엮이고 싶어 하지도 않고, 여기에 본인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도 혐오하거든.”

  말하다 보니 문득 찔리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떠올렸지만, 윌리엄은 내색하지 않았다. 연우 또한 사생활을 추문하려는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눈으로 확인하러 온 것이다.”

  더더욱 의중을 알 수 없는 말을 연우가 입 밖에 낸 순간, 낯익은 흑점이 공중에 생겨났다. 그것의 존재를 인지함과 동시에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무실에 스쳤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공간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 큰 힘이 격돌했음을 알렸다. 파장이 한차례 지나가고, 형태조차 실재하지 않을 흑점이 흩어져 사라졌다.
  윌리엄은 그게 츠바미가 사용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윌리엄이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방해했고, 마안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괜찮은 건가, 이거…’

  연우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면 묻겠다. 「에반제리움」은 네게 관심이 없나?”

  어라.
  듣고 보니 그건 아니었다. 츠바미가 성가신 이유는, 오히려 윌리엄을 싫어하는 주제에 윌리엄에게 관심이 많기 때문에 성가신 것이었다.

  “「에반제리움」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미워할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에게 사람을 미워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깎아 다듬은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나다.”

  꽤 단정 지어 말하고 있지만, 윌리엄은 그 말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컨대, 그녀도 자신의 명제에 오류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콕 집어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그것을 아끼느냐고, 아낀다고 한다면 아끼고 있다. 으레 사용한 물건에는 사소하게 정이 붙는 법이다. 헌데 최근에는 참으로 불쾌한 언동을 하더구나. 인형 따위가 사람인 체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타일렀거늘. 아마 그것에게 불을 나누어준 것은 불구대천지수이겠지. 하여 이 눈으로 직접 보니 실로 보잘것없어. 하찮다. 어리석어. 못났구나 가엾은 「에반제리움」.”

  인간의 도구화. UGN에서도 행하고 있었다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조직의 취지와 지향점은 선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행하는 이들이 모두 선하고 애정 깊은 인물들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윌리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고작 그것뿐이라면 친숙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다만, 방법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있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인간이길 포기하라고 말해 봤자, 폭력으로 일생을 억압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 단순히 따르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리스크가 크다는 거다. FH가 괜히 품을 들여 세뇌장치를 활용하는게 아니다 이 말이야.

  “어째서 그런 방식을 선택한 거지?”
  “그대는 그런 게 궁금한 건가. 아니, 어쩌면 그저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어느 쪽이든 나에게도 지금은 손님의 의무가 있는 것이겠지.”

  “아무개 탐정이여. 그대는 어떻게 하면 삶을 그만두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있나.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만둘 수 있나?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고립되면 살아가는 것을 그만둘 수 있나?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만둘 수 있나? 생사유전의 끝에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알고 있나?”

  갑작스러운 질문. 윌리엄은 짧은 고민을 거쳤다.
  “아마 ‘나’겠지.”
  “그렇다. 욕을 버리고 색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나’를 버리기 위한 고행이다.”

  연우는 입을 다물고, 찻잔의 수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많은 것을 정리해 버려 흐려진 기억 속에서, 자신의 ‘책임’의, 「에반제리움」에 대한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그것은 삶을 끝내길 바랐다. 그래, 삶을 끝내는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그 경지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욕계에 태어난 중생으로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렇기에 나는 그것이 중생에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조금도 변함없는 연우의 표정에 미미한 감정이 드러났다. 아주 미미하고도 짧은 순간이었음에도 윌리엄은 그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익숙하다, 고 느끼고 있었다.

  ‘죽고 싶은 표정이군’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윌리엄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유별나지도, 딱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저쪽은 죽기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기에 죽지 못하는 쪽이겠지.
  이로즈사에 츠바미. 이걸로 네 스승이었다는 사람이 터무니없이 견고한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만고속에 있었다. 번뇌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지옥을 살고 있었다.”
  “그 녀석을 동정했나?”
  “잊었다. 찰나의 감상 따위 보잘것없는 일이지. 아무튼, 나에게는 의무가 있었다. 그것에게 버리기를 종용했던 이유다. 그래, 버리는 것이다. 욕심을 버린다. 감정을 버린다. ‘나’를 버린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하다. 가능할 리가 없지. 그럼에도 그것을 무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깎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그로서 그것은 하찮은 염을 떨쳐낼 수 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쓰기 좋은 말 또한 될 수 있지.”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이유처럼 들리긴 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지? 그 밖에도 방법은 많았을 거야. 당신은 조금 비상식적일진 몰라도 비인간적인 사람은 아니고.”

  “당신, 미워했지?”

  연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나아가, 그것이 살의라는 사실을 윌리엄은 직감했다. 반평생 싫어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감각이었고, 인자와 역장이 전개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 억누른 감정인가.’
  그 이상으로 서로를 위협하지 않은 것은, 한계까지 차오른 물의 표면을 건드린 것과 같은 즉각적인 감정반응, 보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들켰을 때의 반사적인 방어본능이라는 사실을 윌리엄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우가 금방 살의를 거두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실제로, 연우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약간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것은 어리석게도 생을 끝내기를 바랐다. 그리도 쉽게 바랄 수 있다니, 그것이 그것의 복이겠지.”

  알만하다. 그 이유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사람은 츠바미를 질투했던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 녀석을 죽은 사람 취급했던 거고.”
  “그렇다.”
  “요는 그 녀석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서 해탈을 권유했고 겸사겸사 쓰기 좋게 만들었다는 거네. 높으신 분께 고분고분하도록. FH와는 정반대의 방식이야.”
  “그렇다.”
  “잘 굴러가던 놈한테 헛바람을 불어넣은 게 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틀린 것은 아니다.”

  ─피곤해!!!!!!!!!
  왜 츠바미가 그렇게 피곤한 인간상으로 자랐는지 단박에 납득이 간다. 그야 그렇겠지. 이렇게 제멋대로인 데다 생각이 많아 번거로운 사람이 그 녀석의 지주를 마련한 것이라면야. 이상한 건 츠바미쪽도 마찬가지다. 척 듣기에도 이 사람은 일방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일 것이다.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건가? 자신의 취급에?

  「그에 순응하길 바랐을 정도로 당신이 증오스러웠던 것이죠.」
  그 말이 맞다. 이마저도, 이제는 지긋지긋한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환각, 환청,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윌리엄은 약을 찾는 대신,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꼬나물었다. 습관적으로 불을 붙이려던 찰나, 손을 멈추고 라이터를 도로 닫아두었다.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가슴 깊은 속에서 자글자글 들끓는 것이 느껴져,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난 여기 떠날 생각도 없고 죽어줄 생각도 없어.”
  “아쉽군. 하지만 그대의 삶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이 또다시 뻔뻔하게 괴로움을 호소한다면 이번엔 악도로 돌려보낼 뿐이다.”

  직역하자면, 나에게는 흥미가 없고, 츠바미 쪽은 꼴사납게 굴면 죽이겠다는 거다. 이쯤 오니 대충 연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배배 꼬아 말하는 츠바미보다 알아듣기는 쉬웠다.

  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윌리엄을 등졌다. 볼일이 끝났다는 거다. 아마도, 애초에 뾰족히 할 말이 있어서 방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저와 한마디를 나눈 것만으로 이쪽을 ‘판단’했을 테지. 그것으로 더 이상 제게는 볼일이 없었을 것이다. 줄곧 무료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몇 마디를 더 나누었던 것은, 단순히 찻물이 아직 남아있어서였을 것이다. 윌리엄은 그 모습을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며 등받이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차례 길게 담배 연기를 흡입하고 내쉬었더니,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뭔가 사찰 나온 소득은 있었나?”

  연우의 발걸음이 잠깐 멈춰 섰다.

  “허무할 정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