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느 이름 없는 산 중턱에 위치한 UGN 상해지부 직속 비밀 조직 ‘천문회’.
조직의 정세에 민감한 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지만,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본부 소속의 엘리트 오버드를 종종 길러내는, 일종의 ‘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정도. 천문회는 지부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훨씬 전, 일종의 문파로서 시작되었으며, 그 위치는 불명, 주도하는 가문 또한 베일에 싸인 폐쇄적인 집단이다.
츠바미는 이미 ‘졸업’한 몸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천문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민한 에이전트는 자신이 이곳에 소속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다지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츠바미는 주기적으로 인사를 올리러 얼굴을 비추었다.
특별히 그러한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라도 찾아가지 않으면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물론 생존신고 같은 것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츠바미에게는 지인에게 사소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 딱히 어렵지 않았을 뿐이다.
법당과 식당, 도장을 포함한 몇 채의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 터를 둘러싼 담장. 담장을 따라 걸린 특수한 결계 탓에 곧장 내부로 이동할 수는 없었으니, 츠바미는 정문 앞으로 이동한 뒤 문지방을 넘었다. 인기척을 낼 필요도 없이, 이곳 사람들은 금방 방문객을 알아차린다.
텅 빈 앞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츠바미는 반가운 목소리들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두어 사람인가는 멀리서부터 달려와 손을 잡거나, 껴안거나 했다. 급격히 거리를 좁히자 츠바미는 연신 곤란한 티를 내었지만, 살가운 인사에 미소 짓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제는 남남이라고는 하지만 평범하게 정들었던 이들이었다. 이들 중 몇몇 또한 츠바미에게 정든 추억이 있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신고를 마친 뒤, 츠바미는 건물들을 돌며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누군가는 그 마음이 갸륵하다 하여 미소 지었고, 또 누군가는 인사 올리는 이에게 조금도 눈길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태도 하나하나에 츠바미는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소식이 없길래 객사한 줄 알았더니, 또 죽지 못한 것이냐”
발소리는 등 뒤에서 끊겼다. 그제야 츠바미는 뒤로 돌아 목소리의 주인에게 제 얼굴을 보였다.
「찬미의 좌」, 진 연우.
천문회 당주의 딸이자, 한참 어릴 때부터 임무에 투여되어 숱한 공훈을 세운 베테랑 중의 베테랑. 그런 그녀가 츠바미를 가르친 시간은 길진 않았지만, 오버드로서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었던 츠바미에게 ‘걸음마’를 가르친 것은 그녀였다. 지금의 츠바미가 존재하게 된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런 인물이었다.
“「에반제리움」, 인사드립니다.”
츠바미가 가슴께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사가 늦는구나.”
냉정한 대꾸였다. 츠바미는 고개를 들고, 입가에 미소를 올리며 답했다.
“누님께선 방금까지 산보를 다녀오지 않으셨습니까? 그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필시 원치 않으셨겠죠.”
“아는 듯이 지껄이는 것이 여전해. 불쾌하다.”
“그럼 다물도록 할까요?”
츠바미는 그녀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여전히 웃는 낯으로 예를 갖춘다. 연우는 차갑고 감흥 없는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아들을 정도의 지능은 건재한 것 같아 안심했다. 그래, 입다물고 그 손을 이리 내놓도록 해.”
츠바미는 그 명령에 가까운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 츠바미가 손을 내밀면, 연우가 그 손을 받았다. 연우는 츠바미의 길쭉한 손가락에서 장갑을 벗겨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살피었다.
“곱게도 붙어있구나.”
“누가 다듬어주시는 손인데, 물론.”
“갈수록 능구렁이 같아지는 것 같은데, 나의 착각이냐.”
“당치 않습니다.”
“호오,”
연우는 손을 놓고, 제게 가깝게 고개 숙인 츠바미의 뺨을 붙잡아 이리저리 살폈다.
“이제는 귀염성이라곤 아주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 눈요기할 가치마저 잃어버리면 스스로 죽거라.”
“그리 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연우는 제게 잡혀 힘겹게 허리 숙이고 있던 츠바미를 놓아주었다. 겨우 허리를 펴고 제 뺨을 어루만지는 츠바미를 흘겨보는 그녀의 눈에서, 츠바미는 선의도, 악의도 읽을 수 없었다. 연우는 츠바미를 스쳐 지나가 네다섯 걸음을 걸었다.
“따라와라.”
멈춰서, 돌아보지 않고 츠바미를 등진 채 그리 말하면 츠바미 또한 뒤를 돌아 연우를 따라간다.
“네가 최근에 수행한 임무에 대해서는 들었다.”
츠바미의 손톱을 다듬던 연우가 입을 떼었다. 그것이 츠바미에게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별의 파편과 관련되었던 사건은 꽤 규모가 크기는 했다지만, 평소 연우는 츠바미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 코드네임 외에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고 있을 것이 뻔할 정도니까.
“한동안 네 소식이 없었던 것은 그 임무 탓이었겠지.”
“예, 그런 경위지요. 기다리셨습니까?”
“기억에도 없었다. 오늘에서야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오늘에라도 떠올려주심에 기쁠 따름입니다.”
“네 기쁨 따위 내게 전해 무엇하겠어.”
연우는 자연스레 츠바미의 대답을 흘려보냈다.
“네가 정착하길 간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지요.”
“어차피 너는 우리들과는 상관없는 외부인 나부랭이.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없지. 네가 본부와 일본 변방을 오가는 것 또한, 혹사하다 뒤지든 신임을 잃어 죽임당하든 천문회와는 일절 관계없는 일이야. 알 바가 아니다.”
츠바미는 조심스레 연우의 기색을 살폈다. 연우는 무척 솔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말을 길게 늘리는 일 또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두를 길게 뗀 내용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저의를 알기 힘들었다.
“허나 이해가 가지 않더구나.”
“예?”
그 연우가. 속세와의 단절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을 그녀가 제 일에 관심을 가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츠바미에게서 얼빠진 소리가 났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소리가 퍽 거슬렸는지 연우의 눈이 매서워졌다. 손에 든 것은 무엇이든지 흉기로 만들 수 있는 연우였다. 그런 그녀의 말을 가로막은 데다, 감히 허락 없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었다. 츠바미는 제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못 써먹겠구나.”
연우는 그 이상 꾸짖지 않았다. 그 이상 꾸짖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츠바미에게는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무엇이 안타까운가 하면, 연우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연우의 관심이 소멸하는 것은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이상 제게 말하려던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다음에 연우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츠바미는 제법 기쁘기도 했다.
“그곳이, 그렇게나 네게 각별해졌느냐?”
“각별… 그렇군요.”
츠바미는 생각했다. 미나토 시가, 태양의 탑이 제게 갖는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연우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설명할 수 있다면 연우는 그 보잘것없음에 실망할 것이다. 그녀에게 하찮은 이유를 대는 것은 그다지 망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츠바미에게 있어 꽤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없는 게지요.”
“그리고?”
“… 좋아하는 것들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 …”
과연, 그녀의 앞에서는 무엇이든 숨기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연우가 행하는 것은 질문 따위가 아닌, 명백히 추문이었다. 제게 품은 감정을 털어내는 것뿐인 일인데도 혀가 천근같이 무거워진 기분이 들어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 저라는 개인이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되어 기쁨을 느꼈습니다.”
연우의 손길이 멈추었다. 순간, 실내 공기가 2도는 낮아진 기분이 들었다. 지붕 밑에 샐러맨더 신드롬의 오버드는 없을 텐데도.
무섭도록 시린 시선이 제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는 입에 담기 전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뜻을 전하고 행하는 자가 사욕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음의 눈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가르침이었다. 헌데 츠바미는 스스로의 입으로 가르침에 반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연우는 예전부터 제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는 행동을 혐오했다.
츠바미에게 있어 연우를 실망시킨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녀를 실망시키는 일이야 처음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숱하게 그녀를 실망시키게 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츠바미가 우려한 것은 단순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연우는 무척 불같은 인물이었다. 옮겨붙은 불은 지나간 자리에 재만 남기고 모든것을 태울 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츠바미가 이 이상으로 자신의 오점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잠자코 지켜볼 만큼 너그러운 인물 또한 아니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어디 얼마나 추악하고 아름다운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일지.”
그러니 이 경우, 츠바미로서는 가장 바라지 않았을 관심이었다.
“누님, 당신의 취향에 맞을 것 같진 않군요.”
“「에반제리움」, 너는 손님맞이가 귀찮다는 말을 참 번거롭게 하는구나.”
“당치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츠바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우가, 찬미의 좌가 긴 안식에서 벗어나 산을 내려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스스로를 다듬는 게 꽤 익숙해졌구나.”
“그것 또한 당신의 가르침 덕. 당신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미숙할 따름이죠.”
“빈말이 유창하구나. 오랜만의 인형놀음은 꽤나 즐겁기는 했다만.”
연우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졌다.
“곧 혼자서도 뛰어다니겠어. 그렇다면 내게도 안식이 허락되겠지.”
츠바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넋두리였고, 탄식이었을 뿐.
두 사람은 짧은 복도를 걸어 하늘 아래로 나왔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복귀하는 츠바미를 연우가 구태여 배웅하는 것은 나름의 호의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츠바미는 문지방을 넘었고, 연우는 넘지 않았다.
“기억해라.”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고, 너의 삶 또한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너의 언어, 너의 행동, 너의 존재가 거울이 된다. 잊지 마라. 네가 네 책임의 무게를 무겁게 여겨야 하는 것 또한 널 위함이 아니니.”
“‘하늘의 사자, 「에반제리움」의 역할을 다하다 죽어라.’, 겠지요.”
인사를 대신하여 서약을 나눈다. 그 후, 간데없는 츠바미가 서있던 장소를 연우 또한 등진다.
“귀엽고 가여운 것.”